산행,여행사진

2011-03-19 사량도

캐비1 2011. 3. 19. 07:39

 

 

蛇梁島

사량도 섬 산행은 해마다 봄철에는 꼭 가는 코스였지만 올해는 통영의 가오치 선착장에서 간 것이 아니고 섬 북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려 고성의

상족암에서 출발하여 ( ( ( 코스 : 상족암 *유람선 이용* --> 내지 --> 지리(망)산(397.8m) --> 촛대바위 --> 불모산 달바위봉(400m) -->

메주봉 --> 가마봉 --> 탄금바위 -- 향봉 --> 옥녀봉 --> 대항 ))) 옥녀봉까지 일주하고 대항으로 내려와 상족암 유람선으로 귀가 예정였지만

예상치 못한 서울서 내려온 친구녀석의 무릎고장으로 옥녀봉 직전에서 바로 대항으로 내려와 무척 아쉬움..

사량도 산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옥녀봉의 가파른 바위를 로프와 사다리 타고 오르 내리는 재미인데 그것을 놓쳤으니 또 가고 싶단 생각...

뭔가 빠진듯한 느낌....작년에는 일주도로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올해는 산위에서 보니 섬 둘레를 완전히 일주도로가 두르고 있음.

버스 요금이 \4,000 이라하니 거리에 비해 너무 비싼 듯 함.

성의 상족암 유람선 선착장

상족암에서 바라본 蛇梁島 

 

 

 

 

고성 공룡 박물관

상족암 청소년 수련원

 

 

 

 

 

 

 

 

 

 

 

 

 

 

 

 

 

 

 

 

 

 

 

 

 

 

 

 

 

 

 

 

 

 

 

 

 

 

 

 

 

 

 

 

 

 

 

 

 

 

 

 

 

 

 

 

 

 

 

 

 

 

 

 

 

 

 

 

 

 

 

 

 

 

 

 

 

 

 

 

 

 

 

 

 

 

 

 

 

 

 

 

 

 

 

 

 

 

 

 

 

 

 

 

 

 

 

 

 

 

 

 

옥녀봉 설화

 

옛날 사량섬(蛇梁島)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첫딸을 낳고 얼마되지 않아 부인이 병들어 죽자, 홀아비가 된 어부는 오직 외동딸 옥녀(玉女)에게 정을 붙이고 살아가게 되었다.

예쁜 옥녀는 착하게 자랐고 아버지에 대한 효성도 지극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옥녀가 커 갈수록 오히려 외롭고 쓸쓸해지기 시작했다.

옥녀봉/뒤에 가마봉이 보인다재롱동이 딸이 죽은 아내를 쑥 빼 닮은 미모의 처녀로 성숙해지자 오랜 독신생활과 외딴 섬에서의 고적함이

되살아난 것이다.

어느덧 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마저 깜빡깜빡 잊어 버릴 때가 많았고,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언뜻 스스로 놀라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는 일이 잦아졌다.

영리한 옥녀는 아버지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씩 난처할 때면 그때마다 슬기롭게

대처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비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욕정을 참지 못한 아비는 결국 옥녀의 방으로 뛰어들어가게 되고 딸은 눈물로 애원하며 저항하는 절박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부지, 정말 이라시모 안됩니다! 사람 까죽을 쓰고 우찌 딸한테 이랄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딸이

아부지한테 우찌 허락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마치 금수처럼 달려드는 아비에게 옥녀는 완강히 저항하다가 그래도 되지 않자 꾀를 냈다.

“아부지, 좋습니다. 정 그라시모 우찌 내가 아부지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마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덤벼 드는 아비를 진정시키기 위해 옥녀는 제안을 했다.

“아무리 아부지 청을 들어 줄라케도 인간의 탈을 쓰고 우찌 그리하겠습니까? 소녀가 저게 뒷산 먼당 바우 벼랑에 올라가 있을테니 아부지가 뒤따라 올라 오이소.

그라고 올라 옴서로 소 멍석을 머리에 둘러쓰고 황소 같이 움메에~움메에~하고 소울음을 내면서 올라와야 됩니다. 그래야만 저도 짐승 메이로 아부지를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몇번 다짐을 받은 옥녀는 도망치듯 집을 나서서 장대같은 비를 맞으며 마을 뒷산으로 올랐다.

잠시 후 아버지의 격정이 가라앉게 되면, 여기까지는 뒤따라 오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옥녀봉그러나 그 기대는 기대에 그쳤다. 옥녀가 산 중턱에 이를 즈음 멀리서 소 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깎아지른 바위 벼랑을 타고 산정에 올라 뒤돌아 보니, 아버지가 멍석을 둘러쓰고는 소 울음을 내며

엉금엉금 기어서 뒤따라 오르고 있지 않은가.

옥녀는 설마하던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었다.

이제 더 이상 오를 곳도 없었다. 오직 옥녀는 천길 바위 벼랑 아래에 몸을 던져 아버지와 자식의 도리인

천륜(天倫)을 지키는 길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옥녀는 결심했다. 치마를 둘러쓰고 천길 벼랑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러한 슬픈 전설로 인해 이 산을 옥녀봉(玉女峰)이라 일컫게 되었으며, 이곳 벼랑 바위에는 지금도 검붉은

이끼가 피어 있어 마치 옥녀가 떨어져 죽은 현장의 선혈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리고 처녀로 죽은 옥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마을에는 전통혼례를 할 때면 언제나 신랑 신부가 나란히 맞절을 하지 않는 것이 오랜 풍습으로 남아 있다.

이 옥녀봉 설화는 실재했던 이야기라기보다 먼 바다 가운데 외딴 섬의 고적한 환경과 마을에서 항시 바라보이는 산봉우리의 성적인 형상 및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라는

풍수지리설, 그리고 많은 수군들이 근무하는 큰 진영의 설치 등으로 인한 성도덕의 문란을 경계함과 더불어 그 윤리성을 담고 있는 설화인 것으로 여겨진다.

※출전;통영시지(1999. 2. 통영시사편찬위원회)

 

 

 

곳곳의 옥녀봉이 거의 다 이런 설화에 얽혀 있다.....

장유, 내가 사는 곳의 굴암산 옆에도 거의 같은 설화로 구전되어온 옥녀봉이란 곳이 있다..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기사들 아버지가 친딸을 어쩌고 저쩌고(아무리 욕정에 굶주렸다해도)....... 아 ! 왕짜증에 왕짜증...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짐승보다 못한놈들이라고 욕했으나 이런 설화를 들으면 아주 옛날에도 그랬던 모양이니 인간도 한낱 미물,

동물에 불과한 모양. 그냥 짐승이지. 이성을 잃음 역시 짐승이여....